녹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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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우리 김재철 MBC 사장님 모시고 이분이 오늘 이런 책입니다. 문수 생각 이분이 경기도지사 때부터 김문수 후보하고 워낙 친하게 잘 알기 때문에 김문수 후보의 생각을 구어체로 문답식으로 쓴 이런 책을 냈습니다. 오늘 한번 모시고 책의 내용과 그 다음에 김문수 후보하고 인연 한번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출연 감사하고요. 시청자 여러분께 인사 말씀부터 한 번. 저는 한마디로 얘기하면 서정국 변호사님이 안 계셨다면 지금 아마 아직도 감옥에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제가 문재인 정권의 적폐 7호, 언론적폐 1호로 찍혀가지고 1심에서 징역 4년을 구형받고 선고는 무죄였습니다. 이 심에서도 또 항소심에서도 또 징역 4년을 받았고요. 선고는 무죄. 그다음에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무죄를 받았는데 아직도 제가 제 고향인 사천 진주 일대에서는 제가 아직 감옥에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시골이다 보니까. 지금 제가 알기로는 MBC 사장할 때 그때 가장 호흡이 잘 맞은 분이 이진숙?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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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기획국장으로 모셔서 기획홍보국장으로 처음에 발탁을 해서 그 이후에 능력이 탁월하니까 처음으로 MBC 역사상 여성이 첫 임원이 됐습니다. 기획본부장이었죠. 그렇게 해서 저하고 인연을 맺어서 지금은 원체 역량도 있고 또 이라크 종국 기자 아닙니까? 그래서 업무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이놈의 문재인 정권 이후에 아직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러면 차경인, 일단 김문수 후보님하고는 언제부터 알게 돼서 어떤 관계를 이어왔습니까? 저는 제가 2010년도 정도입니다. 사장으로 있을 때 그때 우리가 용인에 한 30만 평 정도 되는 드라마 세트장이 있습니다. 동이, 이산 다 이런 옥중화 다 거기서 촬영을 하는데 그때 한류가 드라마부터 바람이 불었지 않습니까? 케이팝 이전에 그래서 많은 분들이 싱가포르다, 일본, 그 다음에 뭐 스리랑카, 베트남, 캄보디아 수많은 특히 동남아 분들이 많이 왔어요 그래가지고 그게 이제 한류 메카죠 경기도 용인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한번 지사님 실에 연락을 해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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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와서 한번 모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번 돌아보시는 게 그래서 한류 메카가 되고 있어서 그래서 흔쾌히 오셨어요 저하고 식사도 하고 여러 가지 한류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제가 공부는 좀 섭외남 스님보다 약해도 노는 건 좀 일각이 있습니다 이 여행하고 그래서 그때 제사장님 생각에 좀 각인이 된 것 같아요 그 이후에는 어려운 시절에 저는 참으로 감사한 게 제가 문재인 시절에 뮤지컬 박정희를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그게 상당히 처음에는 부산 극장 잡기 되게 어려웠습니다. 투자자하고의 문제가 좀 생겨가지고 그럴 때 지사님이 대구 본인도 쉬고 계실 때입니다. 유튜브 하고 계실 때인데 대구에 강영욱 회장님이 계세요 오늘이 5.16 아닙니까 박정희 아카데미를 이끌어 가세요 대구 경북 경주 일대에서 아주 신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강직하고 그 분 보면 꼭 너무나 비슷해서 경북 중고등학교 때도 그렇고 서울대도 친구고 같은 반도 했고 이래서 그 분 보면 비슷해요 우리 김우수 후보님이나 스타일도 그렇고 그래서 그러면서 이제 대구에 가서 공연도 하게 됐고 박정희를 수성 아토피아 그 다음에 이제 오페라하우스 이런데서 공연을 하게 되면서 지사님도 관심을 유튜브 하셨지만 가지고 오시고 사모님하고 거의 뮤지컬 박정희 그거를 보고 그 작년에는 또 제가 유경수를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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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수 그 시절의 아카시아라고 사모님 와서 한 두 번씩 봐주시고 그래서 너무 감사하죠 나경원 의원도 오셨고요 책의 내용을 제가 다 읽지는 못했고요 보니까 다른 작가들이 질문하고 그다음에 사모장님이 대답하는 거잖아요 여기에 보면 쭉 제목이 1부부터 쭉 나오잖아요 제가 좀 궁금한 게 일단 밑바닥에서 길을 묻다. 그게 보면 설란영을 만나다 이런 데 오잖아요. 네, 맞습니다. 혹시 사장님이 아시는 게 설란영 회사하고 김우수국이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오는지 한번 책 내용을 소개해 주시죠. 요즘은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은데요. 제가 설녀사님을 뮤지컬 박정희를 하는 과정에서 오시고 그래서 이제 차도 안산하고 이러면서 옆에서 뵙게 됐고 다행히 또 선녀사님이 고흥이세요 태어난 거는 그래서 고흥인데 그 옆에 순천으로 초중고등학교 순천역을 나오셨거든요 그 순천이라는 데가 사실은 우리가 사천하고 하동하고 다 경계선이 있습니다 바다에서 보면 보여요 저희 삼천부 같은 고향도 그래서 아무래도 정이 들어가게 되죠 예사님도 그렇고 같은 바닷가도 순천 자주 가는데 30분이면 갑니다 우리 사천에서 그러면서 여사님을 뵀는데 그리고 제가 순천여고를 끝내고 스쿨로 왔는데 입시를 한 두 번 실패를 했어요 본인이 가고 싶어하는 거기를 실패라고 하니까 근데 어떤 일을 해도 좋다 이런 생각을 가지신 분이니까 세진전자라고 거기에 들어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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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제 그쪽에 신도루쿠도 있는 거죠 도루쿠 맨도날만을 한국도루쿠 그 직원들이 그래도 한 1,500명 이상의 옛날에는 큰 기업이었습니다 세진전자도 나중에 노조위원장도 하셨는데 그 설려사가 1,000명 이상 되는 노조위원장을 했죠 그래서 얼굴을 실제로 보면 좀 아주 여성답고 좀 찬할펀듯한 이런 게 있는데 사실 굉장한 강단이 있습니다 그렇죠 저도 이런 분 뵀습니다 네 그러시겠죠 언제 친하시잖아요 캠프에도 옛날에 많이 도와주셨고 그래서 그때 이제 금속노조 지부를 할 때 영등포역 앞에 있는데 그게 이제 청년부장이 김문수 그 다음에 이제 여성부장이 설라녀 그래서 처음 만났죠 근데 너무 이제 뭐 완전 촌사랑 같은데 중요한 건 눈이나 그 강직함 이런 거에 약간 끌렸는데 그러다가 이제 결정적인 계기는 그때 이제 청송교도소 뭐 다 잡아간다고 막 수배됐는데 도망갈 데가 없잖아요 도망갈 데가 없었는데 잡히면 숨겨진 사람도 다 처벌받거든요 전두환 시대에 있다니까 그래서 엄청나게 탄압 받을 때였는데 그래가지고 마포에 있는 동생하고 조그만 가게를 세례를 해서 빵집이 사당을 하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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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란형 회사가 이제 처녀 때 근데 거기 이제 어차피 뭐 숨을 데가 없으니까 갈 데가 없는데 가족도 덜덜 떠는 판인데 그래서 그 다락방에 숨어가지고 밥 먹고 그냥 견딘 거죠 나중에 이제 좀 시간이 조금 지나서 나와서 이제 그때 다른 분이 대신 잡혀가서 되게 고생했죠 제가 보니까 이번에 부창부수라고요 원래는 배우자가 중요하잖아요 근데 김혜경이는 벚화 가지고 펑펑 쓰면서 거의 뭐 경기도 이메일 달잖아요. 그렇죠. 근데 저는 설란용 여사 보면 꼭 유경수 여사가 생각나더라고요. 저도 그렇습니다. 정말 어려운 곳에 헌신하는 우리 나환자들 옛날에 소록도. 네 그렇습니다. 지금 설란용 여사도 뒤에서 이런 봉사를 많이 하죠? 아유 그거 정말 근데 예전에 예전에 이게 김은수 후보에 대한 거나 설란영 여사의 이런 사연들이 많이 알려졌으면 참으로 참 좋았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 걸 얘기하고 이러면 사실 더 안 좋은 것 같아요. 제일 좋은 건 그냥 내가 나를 알면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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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만족하게 되는 거죠. 설 여사님이 그러신 분 같아요. 그러니까 어디에 티를 안 내세요. 그러니까 한센병 환자 온 경기도 지역 전 한센병 환자 거의 다 찾아다녔지. 그 다음에 그 처녀들이 애 낳고 버린데 홀타 아동복지 이런데 그러니까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이게 신념이신 것 같아요. 그 설유사를 보면 정말 존경하는 마음이 그대로 생깁니다. 책의 3부에 보니까 제목이 의병의 후예라고 되어 있는데 나의 선조는 의병장이라고 되어 있거든요. 저도 옛날에 지사님께 들은 것 같은데 정확하게 이름이 누굽니까? 제가 다녀왔고요. 제가 지사님의 고향 영천 아닙니까? 영천의 인고면 황강에 다녀왔습니다. 그래서 현장 취재를 우리 팀이 같이 갔었죠. 현장 취재를 몇 달 전에 갔었죠. 그래서 보니까 거기에 가서 김연 선생이라고 사적지로 지정이 되어 있어요. 김연? 네. 김연선생은 위로 올라가면 14대조, 15대조 이런데 임진왜란 때 처음에 1592년 4월 13일에 외놈들이 쳐들어와서 경주성을 거쳐서 영천성을 함락시키고 묵령이 올라가지 않습니까 한양을 불가모 20일 만에 점령했으니까 그때 그 이후에 우리 어병들이 일어났잖아요 조선을 구한 건 어병이었습니다 곽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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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어령의 곽재우가 그 솥바위라고 있는데 그 정암전에서 외놈들을 쳤거든요 호남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그래서 위대한 승리가 있었는데 그리고서 이제 우리가 이순신이 또 바다에서 활약을 크게 하면서 아 이게 외놈 우리가 긁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래가지고 이제 어병들이 영천 어병들이 유명합니다 그래서 영천에서 어병들이 영천성을 탈환했어요 어병들이 그리고 이제 그 기세를 몰아서 은양으로 내려와서 은양읍성도 탈환합니다. 그리고 이제 거기서 은양읍성에서 경주까지가 이제 또 시간은 좀 걸리지만 그 경주성을 탈환했어요. 근데 이제 그때는 경주성은 큰 데거든요. 그래서 이제 광군하고 합세해서 그 포를 쏘고 포탄 이래가지고 이제 우리가 그걸 이겼는데 그 때 승부하셨어요. 40살이었습니다. 그래서 경상북도에서 고기를 보존하고 있고 그 다음에 이시로 지사님이 그런 거에 신경을 많이 쓰시는 분이잖아요. 그리고 거기서는 사적으로 잘 관리하고 있고 그러니까 직손에서 오다가 조금 사촌 이렇게 돼 있는데 그 사당이 있는데 그 옆에가 바로 생가고요. 지금은 집은 없어졌고 땅은 그대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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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희가 경로당에 갔어요 경로당에 갔더니만 김은수 후보 그때 초기에 얘기들이 나올 때 가서 여쭙고 하니까 그 집안이야 아버지하고 똑같아 그래요 아버지도 그러셨대요 그런데 아버지가 그때 보정 썼다가 옛날에 그런 거 많잖아요 비보정 썼다가 잘못돼가지고 그래가지고 고향을 떠나가지고 일곱 형제 중에서 혼자만 대학 나왔잖아요. 혼자만 대학 나오셨어요. 경북 중학교 가서 고등학교 가서 판자집에서 되고 있을 때도 10명이 같이 산 거예요. 식구가. 일곱 자녀에다가 아버지 어머니 9명 정도. 그러니까 공부를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제일 고마워하는 게 국민학교 선생님. 옛날에. 왜냐하면 학교에서 공부하라고 그걸 갖다가 도와주셨습니다.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지금 이번에 김우석 오가 일제시대 때 국적이 일본이라 해가지고 엄청나게 자파들이 공격했잖아요. 집안이 의병 후손이니까 일본 이런 식으로 공격은 안 통하겠네요. 말도 안 되죠. 예를 들어서 14대 5조 김현 선생이 나이 40살에 나라를 구하려고 일본놈한테 맞서다가 총암 맞고 돌아가셨고요. 또 정조부는 대구에서 유명한 국채보상운동 있잖아요. 거기에도 관여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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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대단한 어병 집안인데 사실은 말도 안 되는 걸 가지고 그리고 그 당시에 송기정 선수가 일작에 달았지 않습니까? 어찌할 수 없었잖아요, 우리가. 정책 중에 하나 여쭤보면 눈에 팍 들어오는 게 자영업자가 2년 새 200만 명이 폐업했다고 하거든요. 여기에 대해서 김문수 후보는 자영업을 어떻게 살리느냐 본인이 재래시장 시장대통이 되었잖아요.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번에도 제가 옆에서 대구 서문시장이라든지 밀양의 재래시장이라든지 여러 군데 같이 울산의 재래시장에 다녀왔거든요. 그런데 가보면 임대라고 많이 붙어 있어요 임대라고 4집, 5집 중에 지금 초토화됐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걸 보면서 현장 김문수 후보의 제일 좋은 점 중에 하나가 현장주의자입니다 그래서 GTX도 만들어내고 모든 걸 현장에서 해결하는 거죠 그리고 지금 화제가 됐던 포천에 가서 한센병 환자 가서 15년 전에 약속을 지켰지 않습니까? 강영호 회장이 가장 친한 분이니까 어떤 얘기를 하냐면 대구에서 그때 한 번 선거에 김부겸 의원하고 수선구에서 국회의원 선거를 하는데 강영호 지금 박정희 아카데미 원장이 선대 총괄, 선대 본부장을 하셨는데 그걸 맡아달라고 해서 본인이 했는데 하루는 사람들이 우리 아버지 찾는다고 사람들이 왔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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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캠프로. 그래서 보니까 얼굴들도 다 상한 분들이고 그래서 아버지가 여기 어딨냐고 누구냐고 그러니까 김문수 후보가 저희 아버님입니다 그러더래요 그래서 왜 그러냐고 그러니까 저희 환생병 환자 다 사람들이 피하고 버리고 하는데 오셔가지고 그냥 거기서 자고 지사 때 1박 2일로 지사 때 자고 어려운 상황 없느냐 법적으로 이게 뭐 그분들이 잘 모르니까 돼지막사도 하고 축사도 하고 하는데 잘 안 되잖아요 그걸 이제 도와주고 이런 그 알지 못하다 그래서 강영호 회장도 깜짝 놀란 거죠 아니 세상이 다 피하는 우리 예전에 배너 영화 보듯이 그런 데 와가지고 1박 2일 같이 생활하면서 같이 듣고 같이 입을 듣고 같이 먹고 저는 김은수 후보 이런 점에서는 정말 따라갈 수가 없는 분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존경심이 더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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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제목을 좀 읽기 좋게 뽑아놨는데 이게 뭐냐면 박정희 시대에 지금도 예전에 KBS 그날이나 이런 데 가면 저번에 TV 보다가 많은 사람들이 비판해요. 마치 새마을운동이라는 게 아주 촌스럽고 별 볼 일 없고 뭐 지금 시대에 보면 그렇죠 그 사진을 보면 뭐 개천 거하고 집 고치고 뭐 집안에 이제 그 원래는 다 이제 그 그냥 쪼그리고 앉아서 막 군불 떼가지고 그거 하잖아요 밥도 그거를 이제 서서하게끔 하고 또 마을길 높이고 그 다음에 농로를 6m 6m 옛날에는 그 농로란 게 없었어요 경운기가 어떻게 들어갑니까 근데 경운기가 한 바퀴 다 돌릴 수 있도록 그거 다 박정희가 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그렇게 해서 식량이 우리가 자급자족도 됐지 않습니까? 통일배하면서. 그 전에는 다 굶었죠. 이승만은 한미동맹. 투철한 한미동맹의식. 그리고 또 기독교로 받아가지고 그렇게 됐고. 그 다음에는 박정희는 그 경제를 완전히 일으켰잖아요. 그래서 박정희를 가장 존경하는 게 김문수입니다. 그러니까 박정희의 길을 가면 반드시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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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박정희의 경보고속도로를 생각해서 만든 게 GTX 교통혁명이 필요하다 그래서 제2의 박정희를 흠모하고 그 길을 가면 대한민국 경제 아까 얘기한 자영업자 그 어려운 것도 또 새로운 제2의 새마을운동으로 제2의 시장운동으로 어떻게 하든 자영업자를 도와야 됩니다 이번 선거는 자영업자를 돕는 데 있습니다 그걸 누구보다도 빨리 간파하고 왜 저리 시장만 다니나 근데 그렇게 다니시잖아요 제가 지난달 25일에는 설란영 여사님 모시고 춘천에 있었습니다. 그게 춘천에 제일 큰 시장인데 강원도에서 그 춘천 중앙시장으로 제일 큰 시장인데 거기도 네 집 중에 하나가 닫았어요. 장사가 안됩니다. 그래서 그 설녀사도 동군서주하면서 인사하시고 그랬는데 정말 자영업자가 어렸습니다. 책의 마지막 챕터가 보니까 마지막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김문수 이런 데의 챕터인데요. 이걸 가장 존경하는 이유, 마지막 시청자님들께 호소를 하는 거니까 김문수 후보를 가장 존경하는 이유가 책임적인 게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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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아까 지사 시절에 우리 MBC 용인스튜디오 30만 평에 오시면서 뵙게 됐는데 처음에는 김문수 지사를 처음 보고 이러면 어떻게 보면 약간 딱딱한 면도 있고 역시 그 어병장 집안에 피도 있는 것 같아요. 유학자적인 그런 것도 풍기고 그랬는데 시간이 가면 굉장히 따뜻해요. 그분이 속마음은. 옛날에 이해창 후보가 제가 정치부 기자 시절에 보니까 그렇더라고요. 다 대쪽이라고 해서 피하는데 속은 굉장히 따뜻한 분이더라고요. 이해창 그때 후보가. 제가 정치부 기자 한 10년 했으니까 그래서 정말 여러 가지 존경하는 것은 명예와 동감 명예 중에서 하나만 선택해야 되거든요 어떻게 동감 명예를 한꺼번에 지금 서정우 변호사님도 명예가 있어지시잖아요 우리 보수 우파 쪽에서 서정우가 하면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모르는 사람이 간첩이지 그야말로 그래가지고 정말 동감 명예 중에서 딱 명의만 선택하고 아니 요즘 유튜브에 또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민주화 보상금 주는데 딱 3명이 안 받았다 김동길 교수님 장기표 선배 그 다음에 김문수인데 김동길 교수님은 결혼도 안 하셨잖아요 그런데 장기표 선배는 결혼한 분들이 돈을 장기표 선배는 20억 김문수는 10억을 갖다가 장기표는 20억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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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20억입니다 7년 있었으니까. 그걸 안 받는다? 저는 그런 일은 못하겠어요. 김문석은 3년 있었죠. 그리고 감옥에 있을 때 딸 동주라고 사회복지사죠. 사회도 복지사죠? 네. 써놓은 편지도 보면 참 감동적이고요. 그리고 감옥에서 선물을 하나 간복에서 매내왔을 때 조그만 인형 같은 걸 하나 이 손에 딱 들어가는 걸 줬는데 언젠가 그 동주 씨가 아버지한테 그걸 보여주면서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김문순은 걱정했던 거죠. 내가 감옥에 가 있는 모습을 설녀서가 데려와서 면회도 오고 목포교도소도 오고 이러니까 참 경제교도소도 가슴이 아팠는데 그 딸님과 이분들도 사회복지사의 길을 간다는 게 쉬운 길은 아닙니다. 그것도 명예의 길입니다. 그 집안이 또 설 여사님도 그렇고 그래서 아 이건 참 김문수 선배는 제가 가장 그 제 인생의 사표가 사실은 박정희인데 박정희 대통령의 그 한마디 때문에 제가 열심히 하게 됐어요 중단하는 자는 승리하지 못한다 제 좌우명입니다 중단하는 자는 승리하지 못한다 그래서 중단 없이 끝까지 해야 된다 뮤지컬도 끝까지 해야 된다 남이 다 99% 망한다 그래도 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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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정신으로 해서 회사가 좀 많이 도와주시는 주위에서 응원해 주시는 이 응원이란 게 그냥 금방 응원해 주는 게 아니더라고요 딱 보고 있다가 3년, 5년, 7년, 9년 견디니까 아 이 사람 간단한 사람 아니네 그래서 올해도 올해가 유경수 회사 탄생 100년이세요 오늘이 5.16 아닙니까 탄생 100년인데 그래서 김문수 후보도 생각하고 그래서 유경수 그 시절의 아카시아를 올 8월에 제가 그걸 하려고 합니다. 또 공연을. 그래서 한 군데는 이미 대구 쪽에 됐습니다. 그래서 고리에 해나가고. 그러면서 김문수 후보한테 또 배워야 될 점은 이번에 신념이 정말 대단해서 끊기지가 않아요. 이번에 그 과정 봤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 한덕수하고 하는 과정. 그러니까 끊기지가 않아요. 자기 신념 그리고 중요한 건 신념이 나쁜 신념을 가지면 안 돼 이재명은 나쁜 신념의 길을 신념이라고 하는 거고 우리는 옳은 길을 옳고 좋은 길을 신념이라고 하는 건데 그래서 모든 분들에게 김문수를 위해서 한 표라도 더 모아주십시오 한국이 부탁드립니다 오늘 바쁘실 텐데 책 다시 한 번 문수 생각 이 책 한 권 사는 것도 다 우리 대선 승리의 밑거름이 되는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오시면 그냥 드립니다. 왜냐하면 그냥 어떻게 하든 김문수를 우리 캠프에서도 잘 몰라요. 서변호사님은 훤히 계시잖아요. 제가 물어보면 잘 몰라요. 그래서 캠프 분들에게는 주면서 읽어봐라. 알겠습니다. 기차 목포 가는 KTX에서 구상하는 KTX 두 시간 반이면 다 읽는다. 그리고 현장 취재도 한 거다. 알겠습니다. 하여튼 바쁘신데 오셔서 감사하고요. 다음에 또 모시겠습니다. 또 모셔주면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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